먼저 야요이시대(彌生時代)의 중기부터 말기(기원전2세기경 ~기원3세기경)에 걸쳐 만들어진 동탁(범종형의 청동제 제기)의 원시회화에는 잠자리를 그린 도안을 다수 볼 수 있다. 이는 사마귀나 거미 등과 함께 벼의 해충을 막아주는 익충으로 풍작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려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일본의 오래된 역사를 기록한 『일본서기 』(720 년)에도 당시 「아키쓰 」라고 불리던 잠자리에 대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초대 천황이 된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야마토국(大和國,현재의 나라현)의 높은 언덕에 올라 자신의 영토를 바라보며 그 형태가 「아키쓰가 교미하고 있는 형상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또 같은 책에서는 제 21대 유랴 쿠천황(雄略天皇)이 요시노(吉野, 현재의 나라현 남부)의 벌판에서 사냥을 했을 때, 등에에 팔을 쏘이자 잠자리가 날아와 등에를 물고 날아갔다고 한다. 천황은 매우 기뻐하며 그 지역을 잠자리의 토지라는 의미의 「아키쓰노 」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고사에서 일본의 옛이름을 「아키쓰 시마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위에서 말한 등에에 관한 설화에 의해 잠자리는 길조란 의미의 「가치무시(勝蟲)」라 불리며 무사의 투구나 병사들의 전투모, 가문의 문장 등에 잠자리를 본뜬 문양이나 도안이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잠자리 잡기가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이다. 12세기 후반의 가요집에는 이미 잠자리 잡기에 대한 노래가 남아 있다.
일본의 아이들은 잠자리의 습성을 잘 관찰하고 여러가지 잡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18세기초 데라지마 료안(寺島良安)이 편찬한 일본 최초의 삽화가 들어간 백과사전 『와칸산사이즈에(和漢三才圖繪)』 에는 한 아이가 암컷 잠자리를 짧은 막대기에 실로 묶어 놓고 이를 보고 날아오는 수컷 잠자리를 잡아 노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이런 방법은 「오토리도 리(미끼잡기)」라 불리며 대형 잠자리(특히 왕잠자 리)를 잡기 위해 최근까지 사용됐다.
또 「힛카케도리(걸어잡기)」라는 방법도 있다. 이는 작은 돌 등을 옷감에 싸 60cm 정도의 실의 양쪽 끝에 묶고 왕잠자리를 향해 던지면 먹이로 착각한 왕잠자리가 달려들어 실에 엉켜 떨어진 것을 잡는 방법이다.
근래에는 환경파괴 등의 영향으로 왕잠자리와 같은 대형 잠자리도 그 수가 줄어 잠자리를 잡고 노 는 놀이도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잠자리의 생태관찰에 의거한 포획기술은 일본의 독자적인 아이들의 놀이로 후세에 물려주고 싶은 놀이이다.
일본에서는 「아카톰보(고추잠자리)」(1921년 작)라는 동요가 오늘날에도 폭넓게 불리고 있다. 또 각지에서 자연보호활동의 일환으로 「잠자리연 못 」만들기가 활기를 띄고 있다. 앞으로도 일본만 의 독특한 「잠자리문화 」라 할 수 있는 일본인과 잠자리와의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