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약 2천여종의 호타루가 알려져 있지만, 유충이 수중생활을 한다고 알려진 것은 겨우 10여종 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유충과 성충 모두 육상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본의 겐지보타루와 헤이케보타루는 예외중의 예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하천 등의 수계가 발달해 있을 뿐 아니라, 연못과 늪, 논이 넓게 산재해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수중생활을 하는 호타루는 「마을에 사는 곤충 」으로 광범위하게 서식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최고의 가요집 『만요슈 』(8세기말)에서 에도 시대(17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호타루는 수많은 가요집, 하이쿠, 문장 등에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는 호타루를 인간의 영혼에 비유한 것도 있었다.
또한 에도시대에는 초저녁에 호타루를 잡으며 노는 「호타루가리(반딧불잡기)」가 성행했다. 그런 모습을 그린 풍속화를 보면 부채, 접는 부채, 대나무와 조릿대 잎,잠자리채 등의 도구들이 호타루잡기에 쓰여진 것을 알 수 있다.
호타루가리는 시가현 오오쓰시의 세타와 이시야마 에서 17세기 후반에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번성기인 초여름이 되면 세타시 주변과 교토의 우지와 같은 명소에서는 「호타루부네 」에서 먹고 마시며, 호타루가리의 풍경을 즐겼다고 한다. 또 그곳에서는 호타루가 판매되는 등 당시에는 그다지 흔하지 않았던 듯하다.
18세기말에는 에도에서도 호타루가 판매되면서 에도시 곳곳에 호타루 명소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그러나 민가가 증가함에 따라 호타루의 수도 감소했다고 한다.
시대가 흘러, 1924년, 호타루 판매업자들의 남획으로 겐지보타루의 수가 감소한 것을 우려한 나라는 겐지보타루 발생지의 하나인 시가현 모리야마 지구를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후 각지의 겐지보타루 발생지구의 천연기념물 지정이 잇따라 현재는 특별천연기념물이 1건, 천연기념물이 9건 있다.
이처럼 나라의 법률로 호타루를 보호하는 사례는 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일본에는 지역에 따라 다수의 호타루 가명과 호타루잡이 동요가 남아 있는 등 이처럼 호타루와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가 법제화의 근거일 것이다.
196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부터 환경파괴가 심각해 지고 이와 함께 전국에 산재한 호타루 서식지는 급속히 줄어들었다.「개발 」에 의한 호타루 서식지의 소실, 수계의 오염, 하천의 개수와 호안공사 등이 주요 원인이다.
호타루의 감소에 제동을 걸고자 발생지의 보전과 재생, 또는 창출을 위한 움직임이 다양한 규모로 전국적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먹이가 되는 소라와 조개를 양식하여 이것으로 사육한 유충을 방류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부화기에는 호타루 관찰회 등을 실시해, 많은 시민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일본인과 호타루와 관계는 예전의 호타루잡이에서 구경, 감상, 관찰로 변천하고 있다. 또한 호타루의 보호가 자연보호로 이어짐으로써 호타루는 풍부한 자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전국규모의 사회현상은 일본의 독특한 문화일 것이다. 고대부터 일본인과 호타루와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