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PPONIA
NIPPONIA 제25호 2003년 6월 15일 발행
TOP
특집*
에도·도쿄의 400년
「에도에서 도쿄까지」는 400여년에 걸쳐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거대화가 계속되고 있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가고 생활해가고 있는지 알아본다.
japanese

에도성은 현재, 황궁으로 쓰여지고 있다. 사진은 황궁정문(왼쪽)과 황궁정문돌다리. 안쪽에 후시미야구라가 보인다.(河野利彦)
japanese

거대도시 에도와 에도죠(江戶城)의 성립
글●나이토 아키라(內藤昌)  아이치산교대학 학장(愛知産業大學學長)
japanese

17세기의 도시지도를 복원해보면, 에도는 43.9km² 로 거대했으며, 서양 제일의 도시 로마의 14.6km² , 런던 9.2km² 를 훨씬 능가하는 대도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에도가 거대해진 이유는, 언덕과 계곡, 하천 등의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해 시계방향의 수로가 오른쪽 방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진 도시계획에 있다. 토목기술만으로 에도는 무한대로 규모가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에도죠(江戶城)와 에도의 마을이 발전하는 과정을 고찰하면, 다음과 같이 4기에 걸친 역사가 있다.
발전의 원점인 에도죠는 1590년에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가 입성하면서 에도막부의 중심성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오오타 도칸(太田道灌, 1432~86)이 쌓은 성으로 유명했던 이 성은, 당시 이에야스가 입성할 때 이미 황폐해져 있었다. 성 주변의 돌 축대는 없어지고 잔디로 덮여진 제방만으로 둘러싸인 성 안쪽에는 허름한 저택이 있을 뿐이었다. 보기에도 너무 빈약했기에, 다시 대대적인 보수확충계획이 세워졌다.
제1기(1590~1602): 이에야스에 의한 동일본의 중심지로서의 건설기. 성에는 오오타 도칸 때부터 3개의 유곽이 있었으나, 이에야스는 이 중 하나를 성의 중심부인 혼마루(本丸)로 만들고, 나머지를 니노마루(二丸)로 삼았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를 기본으로 빈 수로를 메우고 유곽 내부를 확충함과 동시에, 바깥쪽 수로를 만들어 성곽을 넓혀 니시마루(西丸)가 증설되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전국을 통치하던 오오사카죠(大坂城)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98)가 후시미죠(伏見城)의 건설을 명령하면서 에도죠의 건설은 중단되었다.
제2기(1603~1616년): 이에야스가 장군이 되고 사망할 때까지 전국통합의 수도로서 에도는 비약적인 발전이 시도되었다. 에도죠의 물자운반의 중요한 수로가 되는 도산보리(道三堀)가 정비되고 대대적인 에도죠 축성계획이 일반에 공표되었다. 이때문에 에도에서 100km나 떨어진 곳에서 석재와 목재를 배로 운반하는 등, 대규모 자재조달이 이루어졌다. 자재가 모이는 도산보리 주변은 해운업자와 재목상 등이 모이고 시장도 생기면서 번성하고 신도시건설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도죠는 본성의 전당과 망루가 지어지고,니시마루(西丸)의 축성이 이어졌다. 망루의 높이는 44.3m에 외관은 5층, 내부는 7층 구조로 평화로웠던 시대에 건설된 성과 비교해 보면 전략적인 구조로 만들어졌다.
제3기(1619~1632): 이에야스가 죽고, 2대 장군 히데타다(秀忠)에 의해 에도죠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모양의 수로가 시계방향으로 끊임 없이 이어지는 도시계획이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칸다다이(神田台)를 깎아 히라카와(平川)의 수 로를 바꿔, 스미다가와(隅田川)와 연결해 에도죠의 북동부가 정비됐다. 칸다다이로부터 파낸 흙은 에도죠 앞까지 다가온 후미를 메우는데 쓰였고, 에도는 성의 남동쪽으로 넓혀졌다. 에도죠에 가까운 매립지에는 다이묘에게 주어지는 택지, 다이묘야시키(大名屋敷) 등이 놓이고, 좀더 떨어진 곳에는 서민들의 거주지구가 되었다. 또 에도죠의 북쪽에서 성의 정면인 동쪽에 이르기까지 돌 축대가 완성됐다. 이 때 성의 망루가 오늘날의 위치에 옮겨졌다. 망루의 외관은 전혀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외관은 흑 옻칠을 한 5층 구조로, 내부는 돌 축대 위에 5층으로 지어져, 안과 밖의 층이 일치하는 구조가 되었다. 돌 축대 위의 높이는 44.8m로, 2기때보다 조금 높아졌다. 니노마루의 전당과 정원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제4기(1633~1651년): 3대 장군인 이에미츠(家光)에 의해 타메이케(溜池)에서 이치가야(市ヶ谷)를 거쳐 코이시가와(小石川)에 이르기까지 에도죠의 서북부 수로가 완성되었다. 이에 따라 에도죠의 중심에서 시작된 소용돌이 모양의 수로는 마을을 둘러싸며 스미다가와(隅田川)로 연결되어 에도의 항구(도쿄만)로 이어진다. 또 혼죠고덴(本丸御殿)과 망루대가 있는 다이텐슈다이(大天守台)가 완성됐다. 망루는 외관 5층, 내부는 지하 1층, 돌 축대 위로는 5층으로, 돌 축대부터의 높이는 3기때와 거의 비슷해졌다. 또, 성 주변을 모두 감시할 수 있도록 지어진, 탑 모양의 하늘을 찌를듯한 망루는 에도죠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에도막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1657년의 화재로 인해 망루가 소실된 후로는 재건축되지 않았다. 하늘높이 솟아있던 에도죠의 상징은 없어지고 단순히 성 외곽의 소용돌이식 평면적 대형화로 도시계획이 추진되어 갔다. 이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거쳐, 오늘날의 도쿄가 시작되면서 도심은 다시 거듭하여 규모가 커져가게 된다.NIPONIA
japanese


BACKNEXT

NIPPONIA
TOP
   특집*    일본은 이게 이상해!?    일본생활
   작게 접어 크게 쓴다    일본의 동물들
   잘 먹겠습니다    새로운 일본 여행안내    커버 인터뷰    오늘의 일본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