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일본에는 혼탕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충격」이「흥미」로 변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그가 다니던 미국인학교와 시즈오카현(靜岡縣)의 한 고등학교와의 교류회에서 이즈(伊豆)의 온천에 가게 되었다. 그 곳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논 한가운데 들어선 온천이었다.
「근처 마을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이용하면서 농사일에 관한 얘기나 사소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이웃과의 허물없는 교류였습니다. 일본인에게 온천은 사교의 장소였습니다. 그 때 비로소 일본문화의 근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 대학진학을 위해, 네프씨는 일단 귀국하게 됐고, 대학원을 마친 후에는「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저널리스트를 꿈꿔왔다. 해외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9년, 염원하던『Business Week』지의 도쿄특파원으로 다시 도일할 수 있게 된 것은 32살 때이다.
「일본은 그사이에 콘크리트와 자동판매기가 널린 나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소박한 시골풍경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유일하게 그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는 온천뿐이었지요」
목조가옥에 신록이 넘치는 대자연. 마을에서 벗어난 한적한 온천에는 옛 모습 그대로의「일본」의 모습이 남아 있을 것이란 생각에 네프씨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TV와 잡지 등을 구석구석 뒤지며, 전국 각지로 무명 온천 찾기에 나선지 20여 년. 지금까지 방문한 온천은 200여 곳에 이른다.
「무명온천이 있는 숙소에 머물면, 그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물로 만든 요리와 그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인정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네프씨가 사랑한 것은 일본인들의 지난날의 따뜻한「온정」인 것이다.
요즘은 부인인 후미코씨와 카나가와현에 자리한 소박한 집에서 단둘이서 생활하고 있다. 네프씨는 집에서도 유카타(浴衣)를 즐겨 입는다고 한다. 앞으로도 온천을 돌며 일본에 뼈를 묻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