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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ONIA 제27호 2003년 12월 1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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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본 여행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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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쿄 (東京)
(2)오사카(大阪)
(3)하기(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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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슈(本州) 서쪽 끝에 위치한 야마구찌현(山口縣). 하기(萩)시는 야마구찌현의 북쪽 일본해에 접해있는 시다. 남쪽에서 북으로
바다를 향해 흐르는 아부가와(阿武川)의 하구쪽에 하기의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시내는 흰 옹벽과 나무벽이 이어지는 조용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작고 평안한 시가지에서 근대일본을 낳은 동란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16세기 하기시를 포함한 일본 서쪽 일대는 모우리(毛利)씨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1600년 세키가하라(關ヶ原)의 난(亂) 당시
모우리씨가 패하자 광대한 영지를 빼앗기고 혼슈 서쪽편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후 1604년, 지금의 하기시에 성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250년 후, 애도막부가 쇠하고 외국으로부터의 거센 개항압력 속에서 혁명적인 생각을 지닌 젊은이들이 이 마을에서 수없이
많이 자라났다. 마침내 막부와 외국과의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중심이 되어 메이지유신을 달성하게 된다. 하기시는 근대일본이 탄생한 근원지인
것이다.
이런 하기시에는 시전체가 역사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건축물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하기성지를 등지고 시중심부로 향하다
보면 모우리이치몽(毛利一門)과 모우리쥬신(毛利重臣)들의 가옥이 늘어선 일대가 나온다. 흰 옹벽이 130미터나 이어지는「구 토이다마스다(問田益田)씨
구 가옥옹벽」과 하기의 무사저택 중에 가장 규모가 큰「구 아사 모우리(厚狹毛利)가문의 하기주택가」등은 상급무사들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런 건물이 모여있는 곳곳에 직각골목인「카이마가리(鍵曲)」가 남아있다. 이는 성에 침입한 적들이 곧바로 전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중급무사나 대상인들의 가옥이 들어선 지역이 나온다. 나마코(석회를 해삼문양으로 바른) 형식의 벽이 아름다운「키쿠야요코쵸(菊屋橫丁)」에는
그 이름의 유래가 된 현존 최고(最古)의 주택가의 하나인「키쿠야(菊屋)가문의 저택」이 있다. 대상인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저택 안에는
병풍과 족자 등 미술품도 전시되고 있다. 또 주변에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와 키도 타카요시(木戶孝允) 등의「젊은 혁명가」들의
생가가 남아있다. 이 일대를 걷다 보면 가옥들의 담 너머에서 지금이라도 혈기왕성한 그날의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착각이 든다.
아부가와에서 갈라진 마쓰모토가와(松本川)을 넘어 동쪽으로 발길을 옮기면「마쓰시타손쥬쿠(松下村塾)」가 있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개설한 이 서당은, 목조 단층집 구조로 불과 50㎡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서당이었지만 이곳에서 다카스기(高杉)와 키도(木戶)를 비롯하여,
나중에 신정부의 수상이 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근대일본을 낳은 수 많은 인재가 생겨났다.
또 서당 북쪽에는 요시다 쇼인을 모신「쇼인진자(松陰神社)」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동쪽으로 걷다 보면 모우리가문의
선조가 모셔진「토코지(東光寺)」다. 500여개의 석등롱(石燈籠)이 정연히 서있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하기시에는 시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긴 역사를 지닌「하기야키(萩燒)」가 있다. 16세기말 조선에서 온 도공들에 의해 시작된 이 하기야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도자기의 하나이다. 특히, 다도에 사용되는 찻잔은「이치라쿠니하기산카라쓰(一樂二萩三唐津)」라 하여 라쿠야키(樂燒)와
카라쓰야키(唐津燒)와 함께 최고의 찻잔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기야키가 발달한 것은 도공들의 우수한 기술과 원료인 양질의 토양이 풍부하고
모우리씨에 의하여 보호육성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하기야키회관(萩燒會館)」에서 하기야키의 특징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하기야키는 칸뉴(貫入)라 불리우는 작은 금이 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용하면서 수분과 차의 앙금이 틈 사이에 스며들어 색이 변하지요.『하기노나나바케』라고 해서, 쓰면 쓸수록 맛이 나는 것이 하기야키의 특징입니다」라고 오카후지 테쓰히코(岡藤哲彦)씨는 설명해 주었다. 하기에는 흔한 옛 민가의 처마끝에도 에도시대 역사의 자취가 느껴진다. 초여름이 되면 가지가 휘도록 열매를 맺은 여름 귤나무가 담 너머로 살짝 얼굴을 내민다. 기후도 생활하는 사람들도 온화한 하기.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하기를 찾는 참 묘미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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