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사무라이)는 원래 9세기 쯤의 궁정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섬기고 신변을 경호하는 사람들의 호칭이었습니다. 사무라이의 어원 ‘사부라우’에는 사람을 섬긴다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후 귀족사회가 힘을 잃고 무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나서 전쟁에서 싸우는 자를 사무라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5세기 중반부터 에도 막부가 성립한 1603년까지 지속된 전국시대에 있어서는 출신 신분에 관계없이 전장에서의 성과로 인해 사무라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에도 시대가 되어 사농공상이라고 하는 신분제도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신분 제도 중에서 무사(사무라이)는 최고의 신분이었으며 일본을 통치하는 신분이었습니다.
에도 시대 이후 실제로 전장에서 싸우는 일은 없어졌으나 현재 무사도로서 알려져 있는 독자적인 이념, 사상이 무사의 자손들에게 이어져 갔습니다. 예의나 마음가짐 등은 각각의 무가마다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스로의 행동 및 책임에 목숨을 건다’, ‘목숨을 버리고 귀인을 섬긴다’, ‘실패했을 때는 자기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갖는다’ 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통되는 것은 ‘목숨을 건다’라고 하는 점으로 이러한 사상에서 일본에서는 ‘할복’이라고 하는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할복은 실패했을 때는 스스로 칼로 배를 베어 목숨을 바쳐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1868년에 장군 도쿠나가 요시노부가 명치천황에 대정봉환하여 무사가 일본을 통치하는 시대가 끝이 났습니다(명치유신).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도 폐지되어 신분은 화족과 평민으로 나뉘었습니다. 화족이 된 일부의 상층 무사 이외에는 평민으로서 스스로의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무사라고 하는 신분은 없어져도 많은 원래의 무사들은 무사로서의 정신성을 소중히 했습니다.
이러한 정신성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도 니토베 이나조가 1900년에 미국에서 “Bushido:The Soul of Japan“이라는 타이틀의 책을 영어로 출판하여 그 일본어판이 일본에서도 출판되어 판을 거듭하게 되면서 무사도라고 하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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